태그 : 아버지
2009/07/02   아버지와 지미헨드릭스, 그리고 트래킹화 [10]
아버지와 지미헨드릭스, 그리고 트래킹화
사람과의 관계는 참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신기한 관계는 하루가 멀다고 연락하고 만나다가 특별히 싸우거나, 서로의 종교나 정치관, 세계관을 비난하지 않아도, 채무와 그에 대한 변제와 상관없이 소원하고 멀어지는 관계일 것이다. 이런 관계를 닮은 옷도 있다. 어떻든 한 때는 마르고 닳도록 입다 어느 순간 입지 않게 되어버린. 다들 이런 옷들이 한 두벌씩은 있을 거다. 내게도 그런 옷이 있다. 바로 아래 사진과 같은, 옷장을 정리하다 발견한 카고스타일 청바지다.
이 바지를 입지 않게 된 것은 살이 많이 빠진(거의 10kg 가까이를 덜어냈다)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전까지는 정말 하루가 멀다고 입고 다녔고. 사실 이 바지는 내가 산 것이 아닌, 아버지의 선물이다. 갑자기 살이 불어 갖고 있는 바지 중 가장 큰 것을 주로 입고 다니다 보니 금새 헤지고 떨어진 아들의 바지를 보고(뭐. 이게 패션이라는 것은 세대에 따라 우주적인 시각차가 있으니) 보다 못한 아버지의 조치(?)인 셈. 이 바지를 사는 순간 아버지 모습을 생각했다. 평생 양복 입고 직장생활을 하셨으니 청바지는 잘 모르실 테고, 할인 매장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매장에 들어가 헛기침 두어 번 하시고, 누군가에게 아들의 외모를 설명하고 적당한 것을 골라달라 하셨을 터. 물론 계산은 현금으로 하셨을 거다. 여전히 카드사용은 빚더미에 올라 앉기 딱 좋은 소비 수단이라 생각하시는 전직 은행원이니까.
처음 바지를 보고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해 안쪽의 탭을 보다가 발견한 태그. Hendrix라는 이름과 이미지를 봐서는 Jimi Hendrix일 것이며, Jimi Hendrix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별 의미가 없는 태그였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음악을 잘아는 아버지의 선물은 분명 아니다. 아버지에게 음악이라고는 남들 다 아는 클래식, 트로트 몇 곡뿐이며, 일요일마다 ‘전국노래자랑’을 즐겨 보는 평범한 취향의 소유자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이 태그를 보는 순간 아버지께 고맙고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사업 크게 하다 한 순간에 거리에 나앉게 된 망한 집안의 장남이 대부분 그러하듯,할아버지 대신 법적 소송과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에 꽤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두 아들이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물론 두 형제 모두 공부보다 다른 것에 신경 쓰며 살았지만, 학비와 집안을 걱정해야 했다면 Jimi Hendrix는 물론 Jim Morrison, Janis Joplin이 얼마나 위대한 뮤지션인지 Ella Fitzgerald의 목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포르쉐 911의 엔진은 왜 뒤쪽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뿐인가. 즐겨 쓰는 온라인의 대화명 역시 다른 것이었을 확률이 높고, 지금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처한 환경에 따라 쉽게 사치가 되어버리는 가치를 알고, 즐기게 해주셨고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삶인지를 직접 보여주셨다. 나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존경스러운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 철없던 시절 아버지께 반항하느라 정신 없었기에 남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많이 해야 할 - 도 못하는 못난 아들이다. 이런. 그룹 N.EX.T의 ‘아버지와 나’ 가사처럼 멋진 포스팅을 하려 했지만 불효자의 아버지 생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신파밖에 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젊은 시절, 여행은 꿈도 못 꾸신 아버지. 며칠 후 중국 여행을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가볍게 다녀오시라 트래킹화 하나 샀다. 함께 가시는 어머니께는 시원한 여름 모자를 드릴 것이다. 아버지가 사주신 청바지와 그 청바지의 태그에서 스포이드처럼 취향을 빨아올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생활의 증여에 비하면 가격도, 의미도 적은 일상적 선물일 뿐이다. 부모님이 가실 때 가장 많이 우는 자식은 가장 효도를 하지 못했던 자식이라 했던가. 지금의 나라면, 당신이 가진 후 저 바지 부여잡고 대성통곡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지금이라도 노력해야겠다. 이미 대성통곡은 거스를 수 없는 수순이고 대성통곡 중 기절이나 하지 않으려면.

글을 쓰는데 목과 심장이 계속 따끔거린다.

PS.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by bikbloger | 2009/07/02 21:25 | Early Editorial - 생각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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