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을 노래하는 극장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공간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살고 있는 방일수도 있고 학교일수도 있겠습니다. 저 역시 그런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공간입니다. 바로 이곳이지요.

네. 바로 허리우드 극장입니다. 'HOLLY WOOD'의 원어도, 네이티브 스피커의 발음에 가까운 '할리우드'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한 '헐리우드'도 아닌 왠지 짝퉁스런 느낌마저 감도는 허리우드. 하자민 이 공간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삶이 느껴지는 "멀티플렉스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울 시내에 있는 어느 CGV에는 개봉관으로만 11개, 8개씩 있는 곳도 있습니다만 똑같은 영화를 몇 개관에 걸쳐 상영하는지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고 난 후 작은영화(독립영화나 예술영화들)는 설자리가 줄어들었 - 사실 처음에 생길때는 예술영화 한 두 편은 걸어 줄줄 알고 좋아했습니다만 - 습니다.

아시다 시피 낙원상가(이름도 어찌 그리!) 옥상에 위치한 허리우드 극장은 얼마 전 문을 닫고 그 자리에 '필름포럼'과 '서울 아트 시네마'가 생겼습니다. 말 그대로 '예술영화 전용관'을 표방하는 극장들입니다. 과거 영화이론 책에 등장하지만 보기 힘든 영화들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기분 좋은 경험 때문에 요 며칠 그쪽에서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한 낮 장면에 비가 줄줄 내리고 대사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는 걸작들을 않는 3copy, 4copy(사실 1copy나 2copy 정도면 땡큐였던)도 마다하지 않고 보았던 영화들, 제목만으로도 흥분했던 그 영화의 제목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고 돈을 건네면 표를 줍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옥상의 난간에 기대어 홍콩삘 - 옆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너편의 오래되고 자그마한 술집들 -을 보며 피우는 담배한대는 정말 달달합니다.

사실 허리우드 극장이 있는 낙원상가는 '과거 좋은 시절의 뒤안길'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컴퓨터로 음악작업을 하는 시대가 되어 어쿠스틱 악기는 물론 일렉트릭 기타나 드럼 등의 악기 판매가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아래쪽 낙원악기 상가에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악기 수리점 몇 곳에서만 손님을 볼 수 있을 정도랄까요? 그러나...
낙원 악기 상가가 있어 음악이 있습니다. 극장이 있어 영화가 있고, 극장을 바라보는 곳 낙원아파트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춤을 출 수 있는 '1 2 3 캬바레'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기들은 삶을 연주하고, 극장에서는 흥행과 대박을 목표로한 영화가 아닌 '삶과 인생'으로 삭힌 영화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파트에서는 사람들이 섹스를 하며,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고, '나도 한때는 잘나갔다'를 외치며 고단한 삶을 잠시 뒤로한채 춤을 추러 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인간적인 멀티플렉스 공간이 또 있을까요?

지저분하고 낡았지만, 그래서 더 정감어린 이 공간이 오래도록 남아주기를 기원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져가는 아쉬운 것들에 부침니다.

by bikbloger | 2005/05/03 23:26 | Review, 뽐뿌의 다른 이름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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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13월의 혁명자 로오나.. at 2005/09/05 10:01

제목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헐리웃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전적이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개관에서만 개봉하는 엽기적인 형태로 배급된 영화. SF팬들에게는 열광적인 인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제목을 한번쯤 들어보신 분들도 많을 듯합니다. 수입사측은 '미국 박스 오피스 1위! 그러나 국내 개봉은 단, 한 극장! 별난 영화! 별난 개봉!'라고 광고하고 있긴 합니다만, 유일하게 개봉되는 극장인 필름포럼 극장이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임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지요.(먼산) 덤으로 공식홈페이지도 ......more

Commented by 하수처리 at 2005/05/04 02:03
메가박스를 딴듯한 메가넥스도 있는걸요...OTL;;
Commented by 하로君 at 2005/05/04 04:02
아날로그는 점점 디지털에 밀려 사라지고 있지만... 글쎄요. 늘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니 다시금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현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라도요. =)
Commented by 유레이 at 2005/05/04 10:45
말로만 들었던 곳이군요 :) 한번 맘먹구 가봐야겠어요~ (영화 무지 좋아하는)
Commented by 마리 at 2005/05/04 19:29
이 근처엔 맛난집도 많아요....^^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5/05/04 22:53
* 하수처리님//헛... 그렇군요.
* 하로군님//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모습은 변해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변하지 않는것일테니까요(뭔소리냐...)
* 유레이님//예. 영화 잘 선택해서 오시면 좋습니다. 현재 필림포럼같은 경우는 씨네 21창간 10주년 기념 영화제 중이고 아트시네마는 자체적으로 영화를 걸고 있는데... 아트 시네마에 걸리는 영화들이 '예술영화의 대작'들이 많더군요. 필름포럼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 마리님//옙. 며칠전에 2천원짜리 콩비지와 콩국수, 황태국을 파는 구멍가게 골목을 발견했답니다....
Commented by 아우라 at 2005/05/05 01:36
세련된 멋과 대조되는 오묘한 멋을 주는 동네입니다.
그것에 허리우드 극장이 한몫을 하죠...이제 바뀌었군요.
저는 저희 영화 개봉하기 전 시사회를 저곳에서 자주해서 가곤했습니다만...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5/05/05 03:28
* 아우라님//그렇지요? 저 동네 참 멋집니다. 저는 허리우드시절에 본 마지막 영화가 미스터히치 일반시사였던걸로 기억됩니다. 꽤 오랫동안 사시회극장으로 남아 있던듯.
Commented by Juno at 2005/05/05 16:49
어렸을 적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들이 시간이 가면서 하나둘 사라지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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