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매거진 B : 브랜큐멘터리 잡지 #1
(우울하지만) "세상은 갑과 을로 나뉜다".

이 말은 누구에게 들은것 같기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여 구글링을 해보니 내 블로그가 가장 먼저 떴다. 그 내용은,

갑과 을. 누군가는 실력이나 운으로 갑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이런게 없어 을이 된다. 그리고 세상은 갑의 뻣댐과 을의 굴종을 먹고 삐걱삐걱 굴러간다. 언제나 을은 갑의 요구에 힘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으라차차는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왜 이런 글을 썼을까? 곰곰히 기억을 되살려 보니, 단초는 후배와 밤늦도록 이어진 술자리다. bikbloger는 사실 꽤 오랜 시간을 갑도 을도 아닌 지위로, 그보다는 적지만 '갑 같은 을'로 살았던 나름 운좋은 사회인이다. 물론 현재는 혼자 일을 하고 있어 이 나이에 완전한 을의 설움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긴 하다. 사실 세상에 갑과 을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 있다 아니, 있'었'다. 바로 신문이나 잡지를 만드는 기자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흐드러지게 만개한 이 시대의 신문이나 잡지는 그렇지 못하다. 잡지 만드는 사람들은 특정 브랜드 제품의 단점을 익히 알고 있지만 몇 페이지의 광고 (알량하지만 무거운)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가슴 저 편에 묻어두고 산다. 그리고 세상이 다 그런거라 스스로 위로하고 먹고사니즘의 뒤에 숨어 스스로 용서를 받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용서는 확신을, 확신은 맹신을 낳았고 이는 '잡지교'의 중요한 교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단이 나타났다.

# 광고처럼 보이지만, 위 이미지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하철 무가지, M25의 표지. 진행비용이 얼만지 모르겠지만 하단에는 담배 옆면에 새겨진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라는 경고문구(담배 광고는 이것을 표기해야 하기 때문에)도 그대로. 결국 이건 광고다. 표지는 그 잡지의 얼굴, 하지만 자본주의 첨병인 잡지는 얼굴도 팔아 버린다. 쪽팔리게.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오로지 신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이 이단의 잡지는 매달 하나의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어떤 광고도, 협찬도 받지 않는다. 책 안에 삽지로 화보만 꽂아줘도 돈을 주고 아예 잡지 표지를 그 브랜드 제품 이미지로 바꿔 납품하면 꽤 후한 비용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수익모델을 마다 한다? 금세 이단은 업계에서 화제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브랜드=광고'라 착각했던 잡지인들은 크게 한방 먹었다. 바로 <매거진 B> 이야기다. 매거진 <B>의 수익모델 흔하디 흔한, 뻔하디 뻔한 '기업의 광고'가 아닌 '판매(심지어 과월호를 포함한)'다. 그것도 이번호가 아닌 과월호까지 판매 대상이다. 기존 잡지와 본질적으로 다른 이 잡지의 수익 모델이 더더욱 궁금해질 거다. 물론 이들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발행인인 조수용 대표의 여러 인터뷰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아직은 성공적인 느낌이다.

매거진이면 분명 잡지인데 사이즈가 작다. 당연히 광고가 없으니 A4 사이즈나 그와 비슷한 크기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 가방에 넣어 다니기 좋고, 언제 어디서나 펼쳐보기도 좋은 사이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종이의 형량. 가벼운 종이를 사용했기에 가방이 무거워지지 않는다. 그 육중하던 패션지를 생각하면 정말 반가운 포맷이다. 패션지가 무게에 비해 내용은 가벼운 반면 <매거진 B>는 그와 반대로 묵직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또한 창간호(가장 오른쪽)의 표지 코팅은 지문을 확인 할 수 있어서(?) 불편했다. 하지만 그 다음호에서 표지 재질이 바뀌고, 3호와 4호까지 재질을 바꾸는 실험이 계속된다. 불편함을 바꾸려는 노력. 돈을 받고 판매하는 잡지가 따라야 하는 미덕이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광고도 없고, 협찬도 받지 않는다. 게다가 콘텐츠 중 일부는 직접 구매해서 촬영한다. 이건 잡지쟁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다. 이게 되어야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다 보니 잡지의 가격이 비싸질 수 밖에 없다. 권당 가격은 1만 3천원, 게다가 합본호는 1만 6천원이다. 게다가 언니들이 좋아하는 짜잘한 부록도 없다. 응? 뭔가 이상하다고? 그렇다. 월간지는 매달 나와야 하는데 <매거진 B>는 여름과 겨울에 합본호가 있고 이게 더 비싸다. 잡지를 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만들어 본 에디터의 입장에서는 이게 얼마나 직원을 생각하는 회사의 배려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요즘 즐거운 것이 대세다 보니 직원들에게 어떤 결과물이든 즐거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회사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직원이 즐겁지 않은데, 고객 응대건 작업이건 즐거울 수 있을까? 이 정도는 되어야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즐거움은 자존심을 지키고, 직업의 윤리를 지킬 수 있는 근무환경이 즐거움의 선행 조건이다.

이들이 매달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아름다움과 가격, 실용성과 의식(철학)을 가진 제품이 바로 그것. 또한 'B'에는 브랜드와 균형(balance)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균형잡힌 브랜드'가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개된 제품은...

- 트럭 캔버스천(흔히 '호로'란 전문용어로 불리는)재질의 프라이탁(FREITAG)가방
- 자연과 잘 어울리는 최고의 캠핑용품인 스노우 피크(Snow peak)
- 장애인을 위한 특수 신발을 만들던 기술을 러닝화에 점목시킨 뉴발란스(New Balance)
- 가격대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만년필의 맹주 라미(LAMY)
- 접히는 자전거의 롤스로이스 브롬톤(Brompton)

그리고 라미에 대해서 bikbloger는 이런 리뷰를 썼다.
쓸만한 펜, LAMY SAFARI 만년필
휴대용 펜의 정수. LAMY Pico


범작은 커녕 그 보다도 못한 제품에 그럴싸한 브랜드스토리 까지 넣어서 기사를 써야 하는 이 바닥의 수많은, 먹고사니즘의 저주를 받은 에디터들에게 <매거진 B>는 천국일 것이다.

# 소개하는 보다는 소개'되는'이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겠지만... 이 정도야...


공사가 다망하고 할 이야기가 많은 관계로 이 리뷰는 두 번으로 나뉘어 진행할 예정.





by bikbloger | 2012/05/03 12:55 | Review, 뽐뿌의 다른 이름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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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뽐뿌 inside : 매거진 .. at 2013/07/28 20:30

... 않았다. 또 이런 상태에서 &lt;매거진 B&gt;를 발견했다. 그리고 &lt;매거진 B&gt;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요런 리뷰를 쓰기도 했다. [리뷰] 매거진 B : 브랜큐멘터리 잡지 #1 [리뷰] 매거진 B : 브랜큐멘터리 잡지 #2 리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이단의 잡지는 매달 하나의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 more

Commented by 김일권 at 2012/05/03 13:26
저랑 취향이 비슷하시네네요. 저도 열심히 모으고 있답니다^^
Commented by bikbloger at 2012/05/03 13:43
5월호 사러가야 하는데... 공사가 다망해 못움직이고 있습니다. ㅜ.ㅜ
Commented by bikbloger at 2012/05/04 00:04
오늘 6월호 나왔나봅니다. 주인공은 LUSH.
Commented by 식용달팽이 at 2012/05/03 19:19
?! 이런 잡지가 있었다니... 갑자기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 게다가 중간에 링크하신 글 덕에 제가 누군가의 손에서 눈여겨 봐 뒀던 만년필 이름이 LAMY라는 것도 알고 갑니다. ㅎㅎ
Commented by bikbloger at 2012/05/04 00:02
아. 그러셨군요. LAMY 만년필 정말 괜찮습니다. 자꾸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천하귀남 at 2012/05/03 21:31
지름후 파산을 요구하는 악마의 잡지입니다. ^^;
Commented by bikbloger at 2012/05/04 00:01
그... 그렇죠? 나중에 포르쉐 이런거 나오면...
Commented by 병명없음 at 2012/05/04 14:31
'소개하는'이 맞습니다. 주어를 자연스럽게 생략한 문장이니까요. 풀어 말하자면 "매거진 <B>는 매거진 <B>가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브랜드로부터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 않습니다."인 거니까요. 이를테면 '나는 소개팅한 여자에게서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와 같은 구조인 겁니다.
더 매끄럽게 고치자면 영어 번역체인 '로부터'를 '에서'로 고치고 '금전적 지원'을 '금전 지원' 정도로 고치는 게 맞습니다.
Commented by 지인 at 2012/05/06 16:39
-> 소개'하'는&소개'되'는 중 무엇이 확실히 맞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쓰는 이의 의도는 그러했을지 몰라도 읽는 이 입장에서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니까요. 되도록이면 수동형 표현을 쓰지 않는 편이 좋겠으나 이 문장에서는 그리 해석'될'('할') 소지가 다분하니 가타부자하는 것이 별 의미는 없을 듯합니다. 뒤에 언급해주신 로부터-에서, 금전적 지원-금전 지원으로 고치면 더 좋을 거라는 의견은 공감하고요.


이런 콘셉트의 잡지도 다 있군요.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과 가격, 실용성과 의식(철학)을 가진 제품이 바로 그것. 'B'는 균형있는 브랜드.
와, 궁금합니다. 이렇게 꼼꼼히 칭찬하시는 잡지라면 말이죠.
잡지 만드는 분들의 신선한 열정과, 이를 알아보는 쥔장님 감각과 정성 가득한 리뷰 잘 봤습니다. 무엇보다 '발상의 전환'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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