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개념탑재’ 과목 신설하라!
일단 문제부터 하나 내보겠다.

사랑 / 양애경

내 피를 다 마셔요
내 살을 다 먹어요

그럼 나는 껍데기만 남겠죠
손톱으로 눌러 터뜨린
이처럼

당신한테라면 그래도 좋을 것 같은 건

왤까

--------------------

문제 : 과연 bikbloger는 위의 시(詩)를 어디서 발견했을까?

① 판타지 문학 관련 잡지
② 고스(Goth)족 고딩의 다이어리
③ 인터넷 검색
④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장소


답은 무려 4번이다. 며칠전 퇴근 후 약속이 있어서 매일 출퇴근 루트를 벗어나 신사역에서 버스를 탔다. 중앙차로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노선도를 보다, 앞서 소개한 시를 보게 되었다. 위 시는 아래 사진처럼 유리에 투명 시트지 형태로 붙어 있었다.
#죄송하다. 휴대폰카메라 화질이 구리다. 하지만 대강의 내용을
알아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을 듯.

먼저 시인의 순수한 시심(詩心)을 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내용상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장소에 붙어있을 만한 내용의 시는 아니다. 물론 개인의 문화적 취향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상식에 의거해 판단한다면 그렇다. 비슷한 예로 지하철 승강장 벽면에 붙은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게시물 역시 이와 비슷하다. 특정 종교의 교인과 아닌 사람의 괴리는 매우 크다. 물론 이 버스정류장은 현재의 가카께서 서울 시장 재직 시절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상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매우 부족한 – 사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이것이 필요한 - 공무원적 행정의 발로다.

이 모든 것이 공무원 선발시 고등학교 시절 시험과목과 비슷한 것으로 시험봐 점수별로 줄을 세워 선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과목으로 공무원을 뽑으니, 공무원들의 수준이 딱 그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현행 공무원 시험 과목에 국민윤리 빼고 ‘개념탑재’ 과목을 넣어달라. 각 개인이 가진 개념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라 하기 어렵다고? 아니다. 앞에서 내가 낸 문제를 살짝 뒤집으면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발견했을까’를 ‘발견하면 안될까’로 고치기만 하면 된다. 물론 보기는 조금 손보기는 해야겠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공무원 시험과목에 ‘음악 또는 영화 리뷰’, ‘사회봉사’ 등의 과목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문광부 장관이 국립오페라단 해체하려 했을때, 이들의 아름다운 노래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끗발’ 좀 되는 – 장관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 고위 공무원이 있었다면 ‘그러면 안되십니다’라고 한마디 정도 거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음악이라고는 업자들한테 접대받을 때 업소에서 부르고 듣는 노래밖에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또한 우리 사회는 아직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 복지 정책을 세울 때도 탁상 공론이 아닌 현실 감각을 바탕으로 한 정말 괜찮은 정책이 나오게 될 것이며, 장애인들에게 가야할 돈 삥땅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기업의 CEO들 사이에 인문학 배우기 열풍이다. 기존의 마케팅이론으로는 변화하는 소비자를 따라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일을 해야하는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무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언제까지 보고서만 주구리 장창 만들고 있을 건가? 일을 해야 하며 문화를 알아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대구의 밤문화가 아니다.





by bikbloger | 2009/04/30 19:54 | Early Editorial - 생각 | 트랙백 | 핑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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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뽐뿌 inside : 슬픈 생.. at 2009/05/08 01:52

... 제 만드는 것보다 국민 생활에 관련된 문제 해결이 훨씬 중요하지 않나? 시청이 존재하는 ‘본래의 목적’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PS.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 – 공무원들 수준을 잘 알기에 – 다. 단속을 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창의적인 발상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거다. ... more

Commented by 시마시마 at 2009/04/30 21:10
여기에 더해 가끔씩은 오자와 탈자도 첨가해준 서울시의 센스 =3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9/05/01 11:30
아. 오자는 시적허용의 차원이고.. 탈자는 누군가가 그 부분을 떼어 버렸더군요. 공무원들이니 오자와 탈자에 대해서는 민감할 듯.
Commented by 천하귀남 at 2009/05/01 20:05
아닌게 아니라 얼마전 세종로 이순신동상의 설명부분에서 명랑해전에서 거북선 12척만으로 이겼다는 황당한 오류가 있어서 신고했습니다. 거북선은 이전에 원균이 다 날려먹고 판옥선 12척인데 황당하더군요.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9/05/01 20:15
그렇군요. 그 동상이 세워진 시기와 세운 사람이 이순신 장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듯 합니다.
Commented by 제나두 at 2009/05/01 20:14
좋은 시입니다. 괜찮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9/05/01 20:16
아. 시 자체는 좋지만, 저 위치는 조금 그렇다는 것이죠. ^^;
Commented by 장풍고수 at 2009/05/01 23:48
뭘 바라겠습니까...=_=
시간아 가라.. 4년만 기다려라..

지요..;;
Commented by 헬퍼 at 2009/05/03 02:57
공감. 그런데 요즘은 공무원 최종 합격에 사회봉사 점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아는 동생(여자)이 최근 9급 전국 1등 타이틀(과천청사에 붙은 명단에서 확인했음)을 거머쥐었는데, 사회봉사 시간이 무려 500시간이 넘는다는군요.. ㅡㅡ;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9/05/06 10:00
아하. 그렇군요. 공무원 시험에 별 관심이 없다보니...
Commented by leanna at 2009/05/03 07:55
에....?;;
'어맛. 너무 좋은 시다 >ㅅ<' 하면서 스크롤 내렸는데............... 역시 제 취향에 문제가.......ㅋㅋ
요새 어딜가든 시 구 적혀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흠..ㅋ
글의 의도는 저도 평소에 생각해오던 것들이었지만요 ^^;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9/05/06 10:01
아. 좋은 시예요.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분명히 다를 수 있는 여지는 있는거죠.
Commented by 글쎄요 at 2009/05/03 13:16
공공장소에 적힐 수 없는 시란 뭘까요. 아니 그 전에, 과연 시란 무엇일까요? 시의 기능은 어떤 것일까요? 시에도 19금 딱지가 붙을 기준이 있어야 할까요? 전 오히려 저 시를 선정한 공무원은 시를 매우 좋아하는 분이고 관료체계의 틈을 슬쩍 타서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선정해 붙였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봐요. 상식에 의거한 판단이라 하셨는데, 상식의 절대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조선일보와 현정부와 뽐뿌님의 상식은 동일선상에 놓여 있나요? 적어도 오늘 이 포스팅에 적용된 상식은 그래보여요. 저는 뽐뿌님이 새마을운동식 건전가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건 아닐까 싶어요. 어허라 둥기둥기 류의 건전시(?)만이 붙어있는 광경은 정확히 대한민국스럽긴 하겠죠만, 저는 자유와 파격의 기운이 사회의 에너지로 기저에 깔려 있는 문화강국을 꿈꿉니다. 저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아 타락하는 청소년을 걱정하시는건가요? 저는 저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아 시인의 꿈을 꾸는 청소년을 기대합니다. 다시금, 시에도 19금 딱지가 붙고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건지 질문을 해봅니다.
Commented by 행인 at 2009/05/05 05:10
글쎄요님/
'때와 장소'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시면 간단해집니다.
쉬운 예로 화장이나 의상 같은 형식도 때와 장소에 따라 예의나 관용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또한 님 말씀대로 관료체계의 틈을 타서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붙인 공무원의 행동이었다면 그거야말로 경솔한 일 아닌가 생각드는군요. 자기가 좋아하는 시는 자기가 찾아읽고 주변인들과 나누면 됩니다. 파격과 충격을 받고 싶어하는 분야와 정도는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누가 누굴 개인적인 취향과 의도로 자극시켜도 된다고 합니까. 더우기 세금 먹는 사람들이 말이죠.
문화예술 관련된 장소라면 소개와 게시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누구나 아침저녁으로 다닐 수 있는 출퇴근길, 등하굣길 버스정류장이라면 사정은 달라지죠. 일단 자연스럽고 편하지가 않잖습니까.
저라면 매일 아침 피곤에 절어 버스를 기다리는 출근길에 저 시를 매일 봐야 한다면 아침기분이 개운치 않을 것 같습니다. 만일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자녀가 있다면 이해능력 공감능력도 없는 어린나이에 이 시를 굳이 읽히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는 뜻도 모르고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시를 매일 아침 유치원가는 길에 읽히고 싶지 않을 것 같군요. 만약 도서관 복도나 공연장 등에서 이 시를 봤다면, 혹은 친한 벗이 읽어보라 알려줬다면 시인의 뜨거운 가슴과 사랑의 아름다운 무목적성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았겠지요. 최근 개봉한 '박쥐'나 기존의 냉담하고도 고혹적이었던 드라큘라 영화들의 미장센도 자연스레 떠올렸겠습니다. 마음에 든다면 시인의 시집도 구매해 늦은 밤 감정이입 해가며 책장을 넘길 수도 있겠지만, 출근길 정류장이나 매일 앉은 회사의 제 책상 앞에 붙여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에는, 공무를 보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공공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건드리면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그건 새마을운동식 정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공공장소에 적힐 수 없는 시란 뭘까요. 아니 그 전에, 과연 시란 무엇일까요? 시의 기능은 어떤 것일까요? 시에도 19금 딱지가 붙을 기준이 있어야 할까요?'라고 하셨는데, 그 답은 스스로 찾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님은 아라키의 누드나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를 부모님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보러 전시장을 찾을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무리 작품 자체가 매혹적이어도 그러긴 쉽지 않으실겁니다. 대부분은 작품은커녕 포스터나 팸플릿도 보이기 저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좀더 자유롭기 위한, 더욱 풍부한 삶을 살기 위한 여러 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님 의견의 기반도 알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불특성다수의 사람들이 종일 오가고 섞이고 장소에 굳이 게시해야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 저 시를 꼭 게시하고 싶었다면, 그 공무원은 정말 시를 모르는 사람인가 봅니다. 잠시 머무는 그 장소에 의미를 더해주고 깊은 사유와 느낌을 갖게 해주는 시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모두가 지루해하는 건전시를 제외하고도 매혹적인 시는 차고 넘칩니다. 자극과 충격을 받아도 불쾌하긴커녕 종일 되뇌게 되고 가슴에 담기는 시, 님 말씀대로 꿈을 꾸게도 꿈을 이루게도 해주는 시 말입니다. 네, 물론 때와 장소 지력 등의 여러 조건들과 무관하게 말이죠. 아마 그런 점에서 빅블로거님은 공무원의 태만을 지적하신 것일테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bikbloger at 2009/05/06 10:02
글쎄요님의 말씀에 대한 댓글을 남기려 했는데... 행인님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 해주셨네요. 장문의 답변, 시간 많이 걸리셨을텐데...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탐진강 at 2009/05/15 23:36
시를 읽다보니 여러가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냥 애절한 사랑의 연인이 읽는다면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본다면 참 요상한 시가 됩니다.
보편타당성이나 상식의 관점에서 더 좋은 시도 많을텐데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행복한 주말 되세요.
Commented by 쥐모가지절단 at 2009/10/11 03:00
전체적인 글의 논지에는 이백퍼 공감합니다.
근데 현행 공무원시험 과목에 국민윤리 안봅니다. ㅡㅡ;;
9급의 경우... 국어(한문포함), 영어, 한국사, 행정법, 행정학 봅니다.
직렬에 따라 조금 변동되기는 하지만 가장 많이 뽑는 9급 일행의 경우 그렇습니다.
7급의 경우는 국어(한문), 영어, 한국사, 헌법, 행정법, 행정학 + 선택과목 보구요.
필수 6과목에 선택 1과목.
왠 국민윤리^^;; 태클은 아니구요 잘못된 정보인것 같아서 덧글 남깁니다.
아 그리고 3차 면접때 사회봉사 가산됩니다. 요즘 공무원 면접에서 사회봉사는 거의 필수입니다. - 지나가던 공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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